자동차 전문 이슈 채널 - 포르쉐 역사의 시작!

자동차 정보이슈채널|2020. 6. 28. 11:35

포르쉐 역사의 시작

포르셰 역사의 시작!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자동차 기술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전설적이 도로 하나와 한 무리의 경주용 자동차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었다. 그가 창립한 브랜드는 1950년대 이래 고성능 자동차의 동의어였고 가장 유명한 작품인 포르셰 911은 거의 반세기 동안 스포츠카의 상징이었다.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1875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한 보헤미아(지금의 체코 공화국)의 마 테르스 도르프 시에서 태어났다. 배관공의 아들로 기계, 전기 공학에 일찍부터 관심을 보인 그는 고향을 떠나 빈의 전기회사 벨라 에가(Bela Egger)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전동식 휠 모터(Wheel Motor)로 구동되는 운송 수단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켰는데, 그것은 1900년에 개최된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전시된 뢰너-포르셰 전기 자동차 (Lohner-Porsche electronic vehicle)라는 결실을 낳았다.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오스트로-다임러와 다임러-벤츠를 위해 계속 자동차와 항공기 엔진을 설계했다. 그는 1930년대에 엄청나게 강력한 그랑프리용 자동차들의 디자이너로 아우토 우니온에 고용됐다. 동시에 히틀러의 지시로 폭스바겐 즉 '국민차'를 설계하기도 했는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야 양산에 들어간 폭스바겐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가 됐다. 포르셰가 본격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들어섰을 때 벌써 70대다. 포르셰는 자신의 폭스바겐 디자인을 바탕으로 엔진과 서스펜션, 플랫폼 차대를 사용한 세상에서 단 1대뿐인 타입 64를 만들었는데, 이 쿠페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때문에 끝내 열리지 못한 경주를 위해 설계된 작은 차였다. 그 차에 사용된 개념은 1950년에 포르셰의 아들 페리 포르셰가 포르셰 사의 첫 양산 모델이 된 도로 주행용 스포츠카인 356을 통해 되살려 냈다. 물론 그는 아버지의 개념을 세련되게 다듬어 냈다. 356은 원래 오스트리아 그 뮌트에 있는 포르셰 사의 공방에서 제작됐지만 자동차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적절한 조립 라인을 구축하려면 좀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졌다. 1950년경 조립 라인은 독일 남서부 슈투트가르트의 교외에 있는 취펜하우젠의 더 큰 공장으로 이전됐다.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이듬해인 1951년에 75세로 별세했다. 356의 수평 대향 4기 통 엔진은 특수한 크랭크샤프트와 커넥팅 로드를 사용했고, 배기량이 1,086 시시에서 1,488 시시로 점진적 증가했다. 또한 경주용으로 4 캠샤프트 버전도 개발됐는데 그것들은 강력하고 예민한 엔진으로 알려졌다. 1954년 356 스피드스터(356 Speedster)라고 불리는 경량 모델이 미국에서 즉각 히트를 쳐서 세계 최고의 소형 스포츠카 생산자로서 포르셰 사의 평판을 굳건히 다졌다. 1963년에 포르셰 사는 356을 911로 대체했다. 더 크고 더 세련되고 더 강력하며 신형 2+0리터 공랭식 수평 대향 6기 통 엔진으로 달리는 자동차였다. 원래는 901이라는 이름이었지만 푸조의 이름 번호 체계와 혼동되지 않도록 911로 개명됐다. 자동차의 단순한 스타일링은 페리 포르셰의 아들로 '부치(Butzi)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셰(Ferdinand Alexander Porsche)가 확립됐다. 911은 매일 타도 될 만큼 안정적이고 실용적인 자동차였지만 맹렬한 직진 주행 성능도 지녔다. 엔진을 후방에 장착한 설계는 오버스티어(oversteer, 운전자의 의도 이상으로 많이 꺾이는 경향)를 야기해서 방심한 운전자를 놀라게 할 수도 있었지만 트랙션 성능만큼은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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